노원구 월계2동(허종대 회장),(역사문화분과장)은 노원구청 월계2동 주민센터 홈폐이지 및 홍보물을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시민들이 지난25일 초안산역사문화 탐방프로그램을 김여경 해설사 진행으로 있었다.

이프로그램은 월계2동 주민지치회 역사문화분과에서 주민센터에서 출발-각심재-승극철부묘-비석골근린공원-수국동산까지 환경캠페인을 진행 또한 수국동산 피크닉장에서 주민자치담당 이미나주무관, 김미경사무장, 역사문화분과 김정화총무 지도아래 참가신청자 20여명이 에코백 마을지도 그리기로 역사탐방 및 환경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김여경 해설사는 이날 초안산 역사 대해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楚安山)은 해발114m로 동네 뒷산 정도 높이인데,산을 잘 가꾸지 않아 아카시아와 갈참나무로 뒤덮여 있다.단풍이 절정인 이 계절에 초안산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으로 쓸쓸하기만 하다.그 이유가 있었다.조선시대 묘지였던 것이다.초안산도 망자를 편안히(安)모신다는 뜻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초안산에는 사대부의 분묘에서 서민의 묘가 모여 있다.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은 사적(440호)으로 지정되어 있다.무덤에 딸린 상석,문인석,비석,동자상 등의 석물도 수백여 기에 이른다.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서민,중인,내관,상궁,사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무덤이 군집을 이룬다.시기별로도 다양한 문관석과 동자상 등이 분포하고 내관 또는 내시,환관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조선왕실 내시부 소속으로 궁궐에서 왕과 왕비를 시중드는 남성이다.이들은 왕의 최측근이었지만 거세한 남자로 살아야 했다.내시들은 종2품 상선(尙膳)까지 올라갈수 있었다.높은 자리에 오른 내관은 권력도 있고,많은 돈도 모으고,결혼도 했다.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다.초안산 내관의 무덤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후손들은 진짜 핏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또한 그 중에17세기 내관이었던 승극철 부부의 것으로 묘와 비석이 있다.기록에 따르면 내관을 지낸 김계한(金繼韓)과 그의 아들 김광택(金光澤)은 초안산에 무덤이 있었는데,오래전에 양주 효촌리로 옮겨졌다.다만 김계한의 손자 승극철(承克哲)의 묘는 이곳에 남아 있다.승극철은 숙종 때 활약한 정6품 내시였다.비문에는 연양군파(延陽君派)라는 내시 문중을 이루었던 승극철 가계에 대한 기록과 부인과 함께 묻혀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김계한의 손자는 왜 승씨일까.내관은 양자로 대를 잇기 때문에 양자가 원래의 성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내시의 묘들은 대부분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모시던 왕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조선 내시에 관해 남아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마을 사람들은 매년 가을에 내시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그후 전통이 끊어졌다가2013년부터 서울 노원구에서 내시와 궁녀들의 혼을 달래는’초안산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길 안내판에는 초안산 아기소망길 로 불러지고 있다.

김정화 총무는 월계2동 아주 특별한 역사탐방 전 과정을 분과위원들과 함께 준비와 실행에 있어서 주민자치위원으로 자부심을 가진 다고 말하며 추후 일정은 2523() 3620(). 4.5.69.10,11(날짜미정)까지 진행한다고 말했다. morasoo3927@gmail.com 김 형 수 기자